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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회장 "신앙인은 때때로 광인, 공산당원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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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회장 "신앙인은 때때로 광인, 공산당원과…"

[중앙일보] 입력 2011.12.17 05:00 / 수정 2011.12.17 10:45

천국 가기 힘들다는 부자, 악인인가

이병철 회장, 타계 한 달 전 24개 영적 질문 … 차동엽 신부가 24년 만에 답하다
24개 질문과 답 묶어 『잊혀진 질문』 책으로

이병철 회장, 타계 한 달 전 24개 영적 질문 … 차동엽 신부가 24년 만에 답하다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오른쪽)이 1987년 타계 한 달 전에 천주교 신부에게 전한 종교적 질문지가 24년 만에 공개됐다. 인간과 신, 그리고 종교에 대한 실존적 물음이 담겨 있다. 이 회장의 비서실에서 10년간 근무했던 손병두 KBS 이사장은 질문지의 글씨에 대해 “당시 비서실 전속 필경사의 필체다”라고 확인했다.

삼성그룹 창업주 고(故) 이병철(1910~87) 회장이 타계 한 달 전 질문지를 남겼다. 돈에 관한 얘기도, 기업에 관한 얘기도, 경영에 관한 얘기도 아니었다. 2년째 폐암과 투병 중이던 이 회장은 인간과 신, 그리고 종교에 대한 물음을 남겼다. 그걸 천주교 신부에게 전했다. 타계 24년 만에 본지가 단독 입수한 이 회장의 질문지는 A4용지 다섯 장 분량이다.

 이 회장의 빛바랜 질문지를 지금껏 간직한 이는 천주교의 원로 정의채(86) 몬시뇰이다. 87년 10월 정 몬시뇰(당시 가톨릭대 교수)은 절두산 성당의 고(故) 박희봉(1924~88) 신부로부터 이 질문지를 받았다. “조만간 이병철 회장과 만날 예정이다. 답변을 준비해 달라”는 말을 들었으나 이 회장의 건강이 악화됐다. 만남은 연기됐고, 다음 달 19일 이 회장은 타계했다.

 이 회장의 질문은 모두 24개다. 단순한 물음이 아니다. 질문지를 남기기 2년 전, 이 회장은 폐암 진단을 받았다. 암진단을 받은 직후 일본인 저널리스트를 만나 이 회장은 이런 말을 했다. “인간인 이상 생로병사를 피할 수는 없다. 불치병이라면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차분히 떠난다는 건 아무래도 이상(理想)에 지나지 않는 것 같고, 적어도 살아서 아등바등하는 흉한 꼴만은 남들에게 보여주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렇게 이 회장은 폐암을 안고 2년을 보냈다. ‘대한민국의 최고 부자’‘재계의 거물’‘현대사의 거목’은 어땠을까. 투병 중에 이 회장은 삶을 돌아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또 죽음을 예견하며 어떤 고뇌를 했을까. 이번에 공개된 질문들은 가볍지 않다. 무겁다. 그리고 깊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이 회장이 던졌던 인간적 고뇌, 실존적 시선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의 첫 질문은 직설적이었다. “신(神)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신은 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나?” 그렇게 종교의 ‘급소’를 찔렀다. 물음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신이 인간을 사랑했다면, 왜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주었나?” “종교가 없어도, 종교가 달라도 착한 사람들은 죽어서 어디로 가나?” “성경에 부자가 천국에 가는 걸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에 비유했다. 부자는 악인이란 말인가?” 그렇게 가슴의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물음들이었다.

절절하게 흘러가던 물음은 마지막 질문에서 멈췄다. “지구의 종말은 오는가?” 첫 질문은 ‘시작’, 마지막 질문은 ‘끝’에 관한 것이었다. 이 질문을 통해 이 회장은 자신의 삶, 그 시작과 끝을 돌아봤을까.

 삼성그룹 비서실에서 이병철 회장을 10년간 보필했던 손병두(70) KBS 이사장은 “당시 비서실에 필경사가 따로 있었다. 보고서를 올릴 때 또박또박한 필체로 다시 써서 올렸다. 이 질문지는 비서실 필경사의 필체”라고 확인했다. 정 몬시뇰은 “이건 영혼에서 나오는 물음이다. 물질에서 나오는 물음이 아니다.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심령의 호소가 담겨 있다. 그래서 ‘오늘’을 사는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이 회장의 질문지에 담긴 메시지를 요즘 젊은이들도 숙고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24년 만에 깨어난 이 회장의 질문에 정 몬시뇰의 제자인 차동엽(53) 신부가 답을 했다. 연말에는 답변을 묶어 『잊혀진 질문』이란 책을 출간할 예정이다.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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