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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홍희 캐나다 망명하고 1년 뒤, 박정희 ‘김운용의 WTF’ 띄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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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홍희 캐나다 망명하고 1년 뒤, 박정희 ‘김운용의 WTF’ 띄워

[중앙선데이] 입력 2008.09.07 09:47 / 수정 2008.09.07 13:16

WTF와 ITF, 대결 30년

중앙SUNDAY

1955년 4월 초 서울 시내 한 요정에서 무인(武人)협회 결성을 위한 회의가 열렸다. 29사단장 최홍희 장군이 새 협회의 이름으로 ‘태권’을 제안했다. 가라테(당수) 유단자였던 최 장군이 6년간 고심 끝에 만든 민족 고유 무술이라지만 당시는 공수도·당수가 대세였다. 뜬금없어 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채택됐고 이승만 대통령의 재가를 받았다. 대한민국 국기(國技)무술 태권도의 탄생이었다.

태권도는 번창했다. 58년 중순 서울을 방문한 고딘 디엠 베트남 대통령이 시범 공연을 관람했다. 59년 가을엔 대한태권도협회가 결성됐다. 자유중국·독일·이탈리아·터키·이집트로 시범단을 보냈다. 소장으로 전역한 최홍희는 말레이시아 대사 시절 태권도에 ‘올인’했다. 66년 3월 22일 옛 조선호텔에서 국제태권도연맹(ITF)이 결성됐다. 창설 멤버는 한국·베트남·말레이시아·싱가포르·미국 등 9개국이었다. 최홍희는 총재가 됐다. 67년까지 50여 개국에 태권도를 보급했고 40개국 국가협회가 ITF에 가입했다.

그러다 분란의 시절이 닥쳤다. 71년 8월 박정희 대통령이 자신을 연맹에서 몰아내고 박해하려 한다고 생각한 최홍희는 72년 3월 캐나다로 망명했다. ITF는 한국을 떠났다. 박 대통령은 73년 8월 청와대 경호실의 김운용을 중심으로 세계태권도연맹(WTF)을 결성했다. 분단과 대결 시대의 막이 오른 것이다.

남한의 버림을 받고 기댈 곳이 없던 최홍희의 ITF에 북한이 손을 뻗었다. 79년 9월 시범단과 함께 최 총재는 평양을 방문했다. 정준기 당시 부총리가 그를 맞이했고, 김일성 주석에게 태권도를 설명할 기회도 가졌다. 북한은 ITF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냉전 시대에 휘말려 WTF와 ITF는 각을 세우며 대립했다. WTF가 80년 8월 모스크바 올림픽 총회의 승인을 받고 ITF의 해외 출발점이었던 말레이시아에 이어 포르투갈·네덜란드에 협회를 만들었다. 또 베이징 경찰부대에 WTF가 사범을 보내자 ITF는 82년 전두환 전 대통령 암살 기도로 맞섰다.

ITF는 완전히 북한 쪽으로 기울었다. 84년 평양의 지원으로 태권도 백과사전을 펴냈다. 최 총재는 86년 6월 조선태권도 시범단을 이끌고 중국에 갔다. 90년엔 당시 유엔 주재 한시해 북한 대사가 태권도 사업을 전담했다. 92년 9월엔 김일성 주석이 태권도전당을 만들어줬다. 김용순 당시 노동당 비서는 “김정일 장군이 최 선생 사업을 잘 도와 드리라고 지시했다”는 말도 했다. 북한의 개입 덕택에 ITF는 세계 100여 개국에 3500만 명의 회원을 거느린 세계적인 스포츠 조직이 됐다.

하지만 최 총재는 늘 WTF의 성장을 의식했다. 최 총재는 “김운용이 똑똑하지만 새까만 후배가 하는 일이라고 무시했는데 남한의 지원을 받은 WTF가 훌쩍 커 버렸다”고 자주 말했다고 아들 최중화씨는 밝혔다. 최 총재는 2002년 6월 15일 평양에서 암으로 사망했다.

최홍희라는 카리스마가 사라진 ITF는 셋으로 쪼개졌다. 하나는 장웅 북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 총재로 있는 ITF다. 최중화씨는 “장웅씨는 조작된 아버지의 유언을 내세워 선출된 불법 총재”라고 주장했다. 오스트리아 빈 법원도 2007년 9월 장웅의 ITF를 불법으로 판결했다. 최씨도 ITF를 따로 만들었다. 2001년 이탈리아 리미니 총회가 ‘2003년 최중화 총재 취임’을 결의했기 때문에 진짜 후계자라는 주장이다. 베트남계 캐나다인 트완 칸이 ‘한국인은 나가라’며 만든 ITF도 있다.

장웅 총재는 9월 중 물러날 예정이다. 최씨는 “주목할 인물은 이용선(44·사진) 후보”라며 “현재 집행총국장인 그는 통전부 핵심 간부”라고 말했다. 정부 당국자는 “최씨의 말이 맞다”며 “이용선은 김정일 정치군사대학 출신”이라고 덧붙였다. 이용선은 2007년 4월 장 위원을 수행해 서울을 방문했다.

안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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