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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년 전 한·일 '독도밀약' 실체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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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년 전 한·일 '독도밀약' 실체는 …

[중앙일보] 입력 2007.03.19 04:51 / 수정 2007.03.19 07:24

"한·일 모두 영유권 주장하되 반론에 서로 이의 제기 않는다"

42년 전 한국과 일본이 극비리에 체결한 '독도밀약'의 실체가 드러났다.

월간중앙은 19일 발매된 창간 39주년 기념 4월호에서 "한.일 협정 체결 5개월 전인 1965년 1월 11일 서울 성북동 박건석 범양상선 회장 자택에서 정일권 국무총리와 우노 소스케 자민당 의원이 독도밀약에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독도밀약은 한.일 협정의 최대 걸림돌이었던 독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맺어졌다.

월간중앙이 한국과 일본의 생존자 증언과 자료를 근거로 추적한 독도밀약은 '앞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으로써 일단 해결한 것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한.일 기본조약에서는 언급하지 않는다'는 원칙 아래 4개 부속조항으로 구성됐다.

부속조항은 ▶독도는 앞으로 한.일 모두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이에 반론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장래에 어업구역을 설정할 경우 양국이 독도를 자국 영토로 하는 선을 획정하고, 두 선이 중복되는 부분은 공동 수역으로 한다 ▶현재 한국이 점거한 현상을 유지한다. 그러나 경비원을 증강하거나 새로운 시설의 건축이나 증축은 하지 않는다 ▶양국은 이 합의를 계속 지켜 나간다 등의 4개 항이다.

월간중앙은 "그 독도밀약은 합의 다음날 박정희 대통령의 재가를 받았으며 이 소식을 전해들은 우노 의원은 그간 비밀 유지를 위해 이용하던 용산 미군기지에서 일본의 고노 이치로 건설장관에게 전화로 이 사실을 알렸으며, 고노는 이를 당시 미국을 방문 중이던 사토 총리에게 전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한 인물은 김종필 전 총리의 친형 김종락(88.사진) 당시 한일은행 전무였다. 당시 김 전 총리는 한.일 협정 굴욕협상 반대시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의 반 타의 반' 외유를 떠난 상태였다.

김씨는 인터뷰에서 "한국과 일본이 독도 문제를 '앞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으로 일단 해결로 간주한다'는 아이디어는 내가 냈다"며 "박정희 군사정부는 독도밀약을 통해 일본으로부터 한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언명과 함께 경제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당시 요미우리 신문 서울 특파원으로 독도밀약을 위한 정일권-고노 연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시마모토 겐로(80)는 "우노 소스케 의원이 박건석 회장의 자택에서 정일권 총리에게 독도밀약 문건을 건네는 자리에 나와 김종락.문덕주(당시 외무부 차관) 등 세 사람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월간중안은 "한.일 두 나라는 김영삼 정부 때 독도에 새 접안시설을 건설함으로써 약속을 깬 것 외에는 거의 밀약을 준수해 왔다"고 밝혔다.

김상진 월간중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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