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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마음 흔든 한국·네덜란드 할머니 '위안부'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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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마음 흔든 한국·네덜란드 할머니 '위안부' 증언

[중앙일보] 입력 2007.02.17 06:06 / 수정 2007.02.17 07:11

"일본, 사과 않고 우리 죽기만 기다려"

장내는 물 끼얹은 듯 조용했다. 눈시울을 붉히는 미국인들도 보였다. 15일 오후 미국 워싱턴의 하원 레이번 빌딩 2172호실.

하원 외무위원회 아태환경소위가 미 의회 사상 처음 열린 '위안부 청문회'에서 이용수(79).김군자(81).얀 루프 오헤른(85.네덜란드) 등 할머니 3명이 일제의 위안부로 끌려가 갖은 수모를 당한 과정을 생생히 증언했다. 200여 좌석을 가득 메운 방청객들은 3시간 넘게 진행된 할머니들의 증언을 숙연한 표정으로 경청했다.

◆"개.돼지보다 못한 생활"=먼저 증언에 나선 이 할머니는 "1944년 16세 때 대만에 위안부로 끌려가 3년간 일본군의 성 노리개가 됐다"며 "2층짜리 일본풍 위안소에서 하루 평균 4, 5명의 일본군에게 강간당하며 죽으로 연명하고, 툭하면 폭행당하는 등 개.돼지보다 못하게 살았다"고 증언했다.

일본군에 의해 '도시코'라 이름 붙여진 이 할머니는 강제 성추행을 거부하다 전기 고문을 당했고, 한국말을 할 때마다 잔인하게 구타당했다며 치를 떨었다.

미국 워싱턴 하원 레이번 빌딩에서 15일 일본군 위안부 청문회가 열렸다. 당시 위안부로 강제 동원됐던 한국인 김군자.이용수 할머니와 네덜란드인 얀 루프 오헤른 할머니(왼쪽부터)가 서로 손을 잡고 증언을 기다리고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할머니는 "종전 후 집에 돌아오자 어머니는 '죽은 딸이 귀신으로 나타났다'고 나를 깨물었으며 아버지는 화병으로 중풍이 도져 그해 숨졌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일본 정부는 사과했다고 주장하나 단 한번도 사과받은 적이 없다. 세계의 성폭력 만행을 뿌리뽑기 위해서라도 일본은 반드시 사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16세 때인 42년 중국으로 끌려갔던 김 할머니가 나섰다. 그는 "위안소에서 하루 평균 20명, 많게는 40명까지 일본군을 상대하는 지옥 같은 생활을 했다"며 "일본군들은 작은 칼로 내 몸을 조금씩 찌르고 옷을 마구 찢는가 하면 콘돔도 쓰지 않은 채 덤벼들곤 했다"고 몸서리를 쳤다.

이어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해 여러 번 자살을 시도했지만 일본군이 지키고 있어 그럴 기회조차 가질 수 없었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45년 8월 종전이 되자 일본인이 '무조건 나가라'고 해 동료 8명이랑 밭의 배추를 뽑아 먹으며 한 달 넘게 걸어 집에 도착했다"고 비참한 귀향 과정을 전했다. 김 할머니는 "위안소 도착 첫날 저항하다 맞아 왼쪽 고막이 터져 한쪽 귀가 멀었고, 몸에도 너무 많은 흉터가 남아 있다"고 울먹였다.

◆"일본 장교 칼로 위협하며 강간"=서양인 위안부로 증언에 나서 관심을 모은 오헤른 할머니는 "일본군은 내 청춘을 무참히 짓밟고 모든 것을 빼앗아 갔다"며 탁자를 쳤다. 네덜란드 식민 지배하의 인도네시아에서 태어난 오헤른은 19세였던 42년 일본군이 인도네시아를 점령하면서 수용소로 붙잡혀갔다.

오헤른은 "그날 밤, 일본식 꽃 이름이 들어간 이름을 받고 대머리 일본군 장교가 기다리는 방으로 끌려갔다. 그는 칼을 뽑으며 '죽여 버리겠다'고 위협한 뒤 옷을 몽땅 찢고 가장 잔인하게 나를 강간했다. 그날 밤 몇 번이나 강간을 당했는지 모른다"며 몸서리를 쳤다. 오헤른은 "함께 끌려온 네덜란드 소녀들과 3년 반 동안 매일 이런 만행을 당하고 굶주림에 시달리며 짐승 같은 생활을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일본은 95년 아시아위안부재단을 만들어 사적인 보상에 나섰다지만 이는 위안부에 대한 엄청난 모욕"이라고 일갈했다. 이어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 잔학 행위를 시인하고 행동으로 사과한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며 후세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고 촉구했다.

오헤른은 "일본인들은 우리가 죽기를 기다리고 있지만 나는 죽지 않을 것"이라면서 일본이 정식 사과할 때까지 투쟁을 계속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미국 의원들 간 논란=위안부 결의안을 주도한 마이크 혼다(민주.캘리포니아) 하원의원은 청문회에서 증인을 자청, "지금 우리가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일본 정부의 사과를 끌어낼 역사적인 기회를 잃고 말 것"이라며 결의안 통과를 촉구했다. 그러나 다나 로라바허 하원의원(공화)은 "일본은 이미 여러 번 사과했다. 그런 문서를 받기도 했다"며 "앞선 세대의 잘못으로 일본의 현세대가 처벌받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청문회를 진행한 에니 팔리오마베가 아태소위 위원장(민주.사모아)은 "한평생 영어를 써 왔지만 오늘 증언을 들으니 그 비통함을 무슨 단어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할머니들의 아픔을 이해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청문회 의미.전망=이날 청문회는 혼다 등 민주당 의원 5명과 크리스토퍼 스미스 등 공화당 의원 2명이 지난달 31일 일본군의 위안부 동원을 비난하고 일본 총리의 공식 사죄를 촉구하는 결의안(H. Res 121)을 제출한 데 따라 열린 것이다.

의회 소식통은 "청문회에서 일본군의 만행 실태가 폭로되고 일본 정부의 사죄 해명이 거짓임이 드러남에 따라 향후 결의안 통과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혼다 의원은 결의안을 3월 말까지 통과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가토 료조 주미 일본 대사는 이날 아태소위에 서한을 보내 "일본은 이미 위안부 문제에 대해 책임을 인정했고 한국과 필리핀.대만.인도네시아 등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보상도 했다"며 결의안 통과를 저지할 뜻을 분명히 했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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