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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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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중앙일보] 입력 2013.08.30 00:18 / 수정 2013.08.30 00:21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 김광규 번역


나도 안다, 행복한 자만이

사랑받고 있음을 그의 음성은

듣기 좋고, 그의 얼굴은 잘생겼다.

마당의 구부러진 나무가

토질 나쁜 땅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들은 으레 나무를

못생겼다 욕한다.

해협의 산뜻한 보트와 즐거운 돛단배들이

내게는 보이지 않는다. 내게는 무엇보다도

어부들의 찢어진 어망이 눈에 띌 뿐이다.

왜 나는 자꾸 40대의 소작인 처가

허리를 꼬부리고 걸어가는 것만 이야기하는가?

처녀들의 젖가슴은

예나 이제나 따스한데.

나의 시에 운을 맞춘다면 그것은

내게 거의 오만처럼 생각된다.

꽃피는 사과나무에 대한 감동과

엉터리 화가에 대한 경악이

나의 가슴 속에서 다투고 있다.

그러나 바로 두 번째 것이

나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한다.


시는 휘황찬란한 달빛에 비친 뜬금없는 약속에 제 몸을 싣지 않는다. 넘실대는 환상의 파도 위에서 고귀하고 아름다운 노를 저으며 영광스러운 생애를 꿈꾸지 않는다. 시는 꿈에 부푼 성공의 확신 따위가 허황되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일에서 사실주의의 본령을 확인한다. 예쁜 말로 피워낸 나무 한 그루를 양지바른 곳에 심는 대신, 시는 고통으로 내려앉은 한줌의 재를 쥐고서 벌거벗은 몸으로 부당한 현실과 싸운다. 서정적인 감동의 세계에 몸을 내맡기는 대신 시는 비루한 일상을 땀내 나는 언어로 담아낸, 몹시도 이지적 산물이다. 서정시의 용도가 폐기되었다는 시인의 저 말에는 흥에 젖어 감행한 선택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을 때,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시가 곧잘 삶을 속일 수도 있다는 경고가 숨어 있다.

<조재룡·문학평론가·고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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