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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미술관, 복합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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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미술관, 복합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중앙일보] 입력 2013.02.14 03:00 / 수정 2013.02.14 14:40
국보 제135호 ‘혜원 전신첩’ 30폭 중 한 점인 ‘야금모행(夜禁冒行·부분)’. 통행금지 시간에 몰래 다닌다는 뜻이다. 간송이 1934년 일본에 건너가 당시 최고의 골동품상이었던 야마나카 사다지로와 팽팽한 기 싸움을 벌여 되찾아왔다. 요즘 가치로 수십 억 원을 들였는데 조선시대 풍속화의 백미로 평가받는 간송의 대표 소장품이다. 관람객이 즐겨보는 그림 중 첫째로 꼽힌다. [사진 간송미술관]

한국 미술의 보물 곳간 간송미술관을 지키기 위한 프로젝트가 가동된다. 1938년 서울 성북동 97의 1번지에 우리나라 최초의 사설 박물관으로 문을 연 지 75년 만이다.

 국립중앙박물관 버금가는 소장품으로 한민족 문화재 1번지 구실을 해온 간송미술관은 긴 역사 속에서 명품 컬렉션과 학술 가치가 높은 전시로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건립 이후 오랜 시간이 흐른 까닭에 과학적 유물 보존과 미술관 자체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 또한 꾸준히 제기돼 왔다.

검소한 차림으로 도자기 수장품을 어루만지며 세심하게 살피는 만년의 간송 전형필. [사진 김영사]
‘간송 미술문화재단’(가칭) 후원회 발족 준비 모임(대표 이덕훈 전 우리은행장)은 13일 “우리 민족의 보물을 보물답게 지키기 위한 사회적 관심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일제강점기에 나라의 영혼이라 할 문화재를 사재를 털어 지킨 설립자 간송(澗松) 전형필 선생 과 간송 일가의 유지를 받들어 그 정신을 길이 살리기 위한 기금 마련 프로젝트를 선언한 것이다.

 이덕훈 대표는 “설립자의 뜻을 훼손하지 않는 문화재 사랑의 명예로운 실현체,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선친의 뜻을 꿋꿋하게 이어온 후손이 신뢰할 수 있는 구성체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재단 설립을 위한 실무를 맡은 간송 씨엔디(Kansong C&D, 대표 노진호)가 지난 1년 6개월에 걸쳐 마련하고 있는 ‘간송미술관 리모델링 프로젝트’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검토되고 있다.

 첫째, 현재 간송미술관(관장 전성우)이 서있는 성북동 부지에 대중 친화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미술관을 건립해 문화 교육 및 다양한 미디어를 통합한 복합 문화공간을 연다. 둘째, 기존 연구 기능을 담당해온 한국민족미술연구소(소장 전영우)를 잇는 연구자 육성 및 유물보존, 연구를 위한 우리고미술 연구소 기능을 강화한다.

간송 씨앤디 노대표는 “2011년에 서울 방이동 보성학교 부지 지하에 새 간송미술관 건립을 위한 설계까지 마쳤으나 간송의 유지를 잇기 위해서는 역시 성북동 97번지가 적임지라는 의견이 나와 백지화시켰다”고 설명했다. 보성학교는 1906년 이용익 선생이 설립하고, 간송이 1940년 인수해 육성해온 우리나라 최초의 민족사학이다.

 간송 일가에서는 큰손자 전인건(43)씨가 이번 프로젝트를 조율하는 창구 역할을 맡고 있다. 간송의 차남인 전성우(79)씨와 삼남 전영우(73)씨 등 2남3녀는 62년 부친 서거 뒤 법적인 미술관 등록을 하지 않고 오로지 가족의 힘으로 국보급 유물을 지켜왔다.

한국 1세대 건축가 박길룡이 설계해 1938년 지은 보화각. 지금 간송미술관의 전신이다.
1966년부터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실장으로 일해 온 미술사학자 최완수(71) 선생이 이끄는 후학 연구자들이 83회에 이르는 정기전시회를 꾸려왔다. 민족의 문화적 자긍심을 지키기 위해 문화재를 모은 간송의 유지를 받들어 지금까지 전시회 관람은 무료였다.

 수십 년 일원 한 푼 안 받고 국민 모두에게 전통미술의 긍지를 심어준 간송미술관은 이제 그 가치를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는 새 에너지를 구하고 있다. 노 대표는 “일단 종자돈 구실을 할 기금 마련이 되면 프로젝트에 시동을 걸 계획”이라고 밝혔다.

 간송재단(가칭) 후원회는 이사회 의장과 감사, 이사회, 자문위원단 등으로 꾸려져 발기인을 공모할 예정이다. 어림하는 총 예산은 500억~600억 원 정도로 기부자에 대한 예우는 전시실 명칭 부여, 명판 설치 등 다양하다.

 간송미술관의 미래에 대해 관심과 걱정을 드러내온 미술계에서는 일단 이번 프로젝트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간송미술관의 새로운 출발에 대한 기대를 표시했다.

 미술서지학자 김달진(한국미술정보센터 대표)씨는 “간송의 유물과 기획전은 이제 한 가족이 감당하기에는 그 사회적 의미가 중차대해졌다”며 “이번 프로젝트가 국민 모두의 관심사로 받아들여져 제대로 된 새 간송미술관이 건립되는 날까지 더 큰 문화재 사랑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1906년 서울 종로에서 대지주의 후손으로 태어나 억만금 재산과 젊음을 바쳐 일본으로 유출되는 한민족의 유물을 수집해 이 땅에 남긴 ‘민족 문화유산의 수호신’이다. 당시 경성의 번듯한 기와집 400채를 살 수 있는 돈을 바쳐 인수한 고려청자를 비롯해 꼭 지켜야 할 보물을 손에 넣기 위해 펼친 낙찰 비화들이 전설처럼 내려온다. 1945년 보성중학교장, 47년 고적보존위원회 위원을 지냈으며 60년 고고미술동인회를 발기했다. 62년 서거한 뒤 대한민국 문화포장, 국민훈장 동백장이 추서됐다.

◆ 간송미술관은 …

청자·훈민정음 등 국보만 12점


간송미술관은 일제강점기 간송 전형필이 사재를 털어 수집한 문화재를 수장·연구·전시하기 위해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설 박물관이다. 1938년 ‘빛나는 보배를 모아두는 집’이라는 뜻의 보화각(<8446>華閣)으로 출발해 삼국시대부터 조선말 근대에 이르기까지 서화·전적·도자·공예 등 조형미술 전 분야에서 국내 최고 수준의 소장품을 자랑한다.

 간송 수장품의 고증과 감정에 자문을 맡았던 당대의 감식안 위창(葦滄) 오세창(1864~1953)은 간송 컬렉션을 한마디로 “천추(千秋)의 정화(精華)”라 극찬하며 “세상 함께 보배하고 자손 길이 보존하세”라 기렸다.

 국보 제 68호 ‘청자상감 운학문 매병’, 제70호 ‘훈민정음’, 제135호 ‘혜원 전신첩’ 등 국보 12점과 보물 제284호 ‘금동 여래입상’, 제238호 ‘백자 박산향로’ 등 보물 10점 외에 조선 진경시대를 연 겸재(謙齋) 정선의 서화, 추사(秋史) 김정희의 글씨 등 그 소장품만으로 한국미술사를 서술할 수 있을 정도다.

 1971년부터 부설 학술기관인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주관으로 봄·가을 2주씩 정기전을 열어 주제별 유물을 무료로 공개하고 있다. 1997년 5월 ‘개관 25주년 기념 진경시대전’, 2006년 가을 ‘간송 탄생 100주년 전’, 2011년 가을 ‘풍속 인물화 대전’ 등에는 수만 명의 관객이 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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