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심은하 '남자' 정호영 결별사연 고백

글자크기 글자 크게글자 작게

심은하 '남자' 정호영 결별사연 고백

[중앙일보] 입력 2002.01.30 23:42 / 수정 2006.05.05 00:33
파혼의 후유증으로 한국을 떠나기로 결심한 정호영 회장이 미국 출국 전날 본지 기자와 단독으로 만났다. 사랑했던 심은하와 그녀의 가족에게 사죄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어렵게 인터뷰에 응한 정회장. 그가 처음으로 밝히는 ‘만남에서 결별까지’ 풀 스토리.

▣ 개인 소유 주식 복지재단에 기부하고 한국 떠나는 심경

심은하와 파혼한 정호영 회장이 결별 이후에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지난 11월 20일 밤 9시경 한남동 집으로 무작정 찾아간 기자에게 정회장은 결별한 지 두 달이 넘도록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자신의 처지와 그를 공박하는 심은하 인터뷰(월간중앙 12월호)에 대한 복잡한 심경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가 서울에서의 사업을 완전히 정리하고 미국으로 돌아간다는 보도와 심은하의 연예계 은퇴 발표가 한꺼번에 스포츠 신문의 1면을 장식한 날이었다. 갑자기 들이닥친 기자를 보고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막무가내로 내치지는 않았다.

60평쯤 됨직한 빌라에는 정회장 혼자 있었다. 집안 살림을 봐주는 아주머니와 수행비서는 퇴근했다고 전한다. 거실 풍경은 평범했다. ㄱ자 모양의 소파와 TV, 오디오가 놓여져 있었고 벽면 곳곳에 걸어둔 서양화와 동양화 몇 점이 눈에 띄었다. 한강의 야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통창 너머에 자리한 아담한 정원. 집안을 잠시 둘러보는 사이에 그가 스타벅스 커피를 직접 내왔다.

- 미국으로 완전히 떠나는 이유가 결별의 상처 때문인가요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이곳에서 너무 지쳤어요. 한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사업적으로 우리나라에 기여를 하고 싶었습니다. 처음에 장애인 공장을 인수해서 시작할 때에는 정말 잘해보고 싶었죠.

그런데 지난 2∼3년간 사생활 문제로 시달리다보니 직원들에게 면목도 없고, 더 이상 버텨낼 에너지도 바닥이 나더라구요. 결정은 한달 전쯤 내렸어요. 그러니까 은하씨가 나에게 분통을 터트린 인터뷰와는 무관합니다.”

심은하가 ‘월간중앙’과 인터뷰한 날짜는 11월 3일. 물론 그 일로 시기를 조금 앞당긴 것은 사실이다. 기자와 만난 다음 날인 22일에 출국할 예정이라고.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면 거주지이자 사업체가 있는 새너제이에서 생활하게 된다.

- 서울의 사업체들은 어떻게 정리했나요
“주식과 부동산을 처분하고 ‘한국장애인직업안정원’이라는 재단법인에 기부했습니다. 오래 전부터 친분을 쌓아온 공주대 교수 한 분이 그쪽 일을 맡고 계세요.

태릉 일대의 땅 4만 평과 내 개인 소유의 회사 주식 전부를 출연했습니다. 이 일이 아니더라도 다 사회에 내놓으려고 했던 거예요. 내 주식만 정리한 것뿐이지 회사는 전처럼 굴러갑니다.”

- 재단에 출연하는 규모가 있지 않나요
“1차 기증한 금액이 한 20억 이상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재단 관련 일은 제가 일체 관여를 하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규모는 알 수 없어요.”

정회장이 말하는 '20억 이상'이란 태릉 땅 4만평의 공시지가 금액 5억원 가량과 소유주식을 액면가로 계산한 13억원을 합한 금액으로 실제로는 이것보다 훨씬 액수가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참고로 지난 해 5월 한 일간지에서 정호영 회장이 '시가 2백억원 상당의 소유 주식을 재단법인에 출연하기로 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 미국으로 건너간 후에는 뭘 하실 계획이신가요
“그동안 관여하던 회사들이 있습니다. GRF 홀딩스라는 펀드회사 일을 주로 볼 거예요. (GRF의 회사 로고가 찍힌 결산보고서를 보며)바로 이 회사죠. 그외에 정보통신 회사 하나와 신규 투자하는 반도체소재 장비회사 경영에도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 결별의 가장 큰 원인은 나이, 세 가지 나이 모두 내가 산 삶이다

- 은하씨 인터뷰 기사 보셨습니까
“아니요. 우리 직원이 잡지를 사왔던데 보지는 않았어요. 모르긴 해도 거기 나온 얘기가 다 맞을 겁니다. 설령 진실과 다른 얘기가 나온들 내가 무슨 반박을 하겠습니까. 다 내 불찰로 생긴 일인데요. 나를 비난해서 응어리가 조금이라도 풀린다면 기꺼이 감수해야죠.”

- 나이, 이혼 여부, 학력 등을 속였다고 나왔고 결혼도 일방적으로 추진했다고 나왔습니다. 거기에 아무런 이의를 달지 않겠다는 말인가요
“글쎄요…, 그분들 얘기가 다 맞습니다.” 심은하와 그녀의 부모님이 ‘월간중앙’과 인터뷰하는 현장에 함께 있었다는 정호영 회장. 11월 2일자 모 스포츠 신문에 보도된 ‘아직도 은하를 잊지 못한다’는 내용의 기사가 화근이었다.

재결합의 뉘앙스를 풍기는 기사였으므로 곧바로 재결합설이 불거져 나왔고, 다음날 아침 ‘월간중앙’이 사실 확인을 위해 심은하의 집을 찾았던 것.

심은하와 가족들은 기사를 보고 심기가 불편하던 차에 기자까지 찾아온 것에 대해 몹시 화가 났고, 그에게 전화를 걸어 항의를 표했다고 한다. 정회장은 자신은 결단코 그 스포츠 신문 기자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지만 이미 감정이 격앙된 상태였다.

그는 답답한 마음에 정확하게 해명을 하려고 곧바로 심은하의 집으로 향했다. 애초에 인터뷰를 위한 만남이 아니었으나, 기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모양새 이상한 결별 이후의 첫대면이 이루어진 것이다.

- 굳이 은하씨의 집을 찾아갈 필요가 있었나요
“그분들에게 잘못한 부분이 많은 사람이라 또 다시 그 일로 심려를 끼쳐드렸다는 게 너무 송구스러웠죠. 우선은 내 입에서 나온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싶었습니다. 집에 들어갔을 때 은하씨는 2층에 있다가 잠시 후에 거실로 나왔어요.”

- 은하씨 말에 의하면 결별의 원인이 정회장에 대한 불신이라고 하더군요. 나이 속였다는 얘기가 가장 많이 나오던데, 한국 나이로 정확하게 몇 살이십니까
그는 이 질문을 받고 대뜸 자기가 몇 살로 보이냐고 물었다. 40대 후반이나 50대 초반으로 보이냐는 뜻이었다. 겉모습만 봐서는 30대 후반이라고 해도 그냥 고개를 끄덕거릴만 했다.

“언젠가 주민등록번호가 잘못됐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주민번호 끝자리 숫자가 틀리니까 정정을 하라고 하더라구요. 근데 사업도 바쁘고 해서 그냥 내버려둔 거예요. 사실은 내 나이가 세 개입니다. 51년생, 54년생, 64년생. 64년생은 외국 신분 나이구요. 나는 어느 것이 맞다고 시인도 부인도 못하겠습니다. 다 내가 산 삶이니까요.”

- 외국 신분 나이는 왜 64년생인가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외국으로 가면서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습니다.”

- 처음 만난 날 이름과 나이를 속였다는 게 사실인가요

“나이는 미국 신분으로 말했고 이름은 가명을 댔어요. 서른일곱(2년 전이었다)이고, 이름은 정태영이라고 했죠. 내가 주변에 너무 알려진 인물이라서 이름만 꺼내면 누군지 금방 알기 때문에 일부러 말하지 않은 겁니다. 은하씨 주위에 내가 아는 후배들도 있는데 내가 은하씨 만나는 게 드러나면 좀 그렇잖아요. 하지만 회사 이름은 정확하게 알려줬습니다”

▣ 소개팅으로 만난 사이,처음엔 별뜻없이 나이와 이름을 속였다

이쯤에서 두 사람이 처음 만난 99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당시에 심은하는 영화 ‘텔미 섬씽’을 촬영하던 중이었다. 후배들과 어울리는 저녁식사를 겸한 술자리에서 첫만남을 가졌다. 정회장의 미국 출신 후배의 주선으로 자연스럽게 안면을 트게 됐다고. 쉽게 말하면 소개팅의 형식이었다. 평소에 심은하를 괜찮게 생각하던 그가 심은하를 아는 후배에게 한번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4∼5년 전에 강남의 한 카페에 갔다가 우연히 친구와 같이 들어오는 심은하씨를 본 적이 있어요. 참 단아하고 여성적이라는 느낌을 받았죠. 나는 그때 사업으로 정신이 없을 때여서 그녀가 누군지 몰랐습니다. 옆에 있던 사람이 탤런트 심은하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런 탤런트가 있냐고 반문을 했었죠. 거기서는 보기만 하고 왔어요. 그런데 그 후로도 죽 생각이 나더라구요. 그러고 있던 차에 다시 만난 겁니다.”

그는 심은하와 다리를 놔준 후배에게 한가지 조건을 걸었다. 자신의 실제 나이와 신분을 알면 그녀가 안 만나려고 할지도 모르니 나이는 외국 신분에 있는대로, 이름은 정태영으로 해달라고 말이다. 이것이 나중에 심각한 문제가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누구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인사 정도 나눌 때에는 가벼운 마음이잖아요. 처음부터 결혼 생각하고 만나나요.”

- 그 날 은하씨에 대한 첫인상이 어땠나요
“수수한 차림이었어요. 약간 촌티가 난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화장기도 없었고 머리는 길었죠. 첫 인상은 평상시에 TV를 통해 보던 것과 비슷했어요.”

- 첫 날의 데이트가 어땠나요
“나는 술을 꽤 많이 마셨어요. 왜냐하면 나를 솔직하게 보여주지 못하는 자책감을 떨쳐내고 싶었거든요. 은하씨는 술을 거의 입에 대지 않았고, 11시쯤 헤어졌나 봅니다. 은하씨가 친구 집으로 간다고 하길래 내 차로 바래다줬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저녁에 내가 전화를 했더니 반갑게 받더군요. 이튿날 두 번째 만남을 가졌어요. 은하씨 친구들이 같이 나왔었죠.”

- 은하씨는 정회장 첫인상에 대해 뭐라고 말하던가요
“검정색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으로 약속장소인 하얏트 호텔 카페로 갔어요. 매너가 없었죠. 제가 그날 사업차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 정장을 입었다가 은하씨를 만나러 가기 전에 집에 들러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격식 있는 걸 싫어하거든요. 웬 반바지 차림? 참 웃긴다 그랬대요.”

- 은하씨도 정회장에게 호감을 가졌나요
“잘은 모르겠지만 거부하지는 않았어요. 나는 적극적이었고. 은하씨는 시종일관 다소곳한 편이었어요. 확 표현하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첫 만남 이후 두 사람은 꽤 빠른 속도로 가까워졌다. 하지만 그는 신분을 속였다는 사실이 내내 미안했고, 그로 인해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 그렇다고 곧바로 진실을 고백하지도 않았다. 좀더 시간이 지난 다음에 차근차근 설명하려고 했다는 것.

- 그 무렵인가 본데, 은하씨는 영화(텔미 썸씽) 관계자에게 정회장의 실제 이름이 정호영이고 나이가 마흔아홉이라고 들었다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들은 심은하씨는 어떤 반응을 보였나요
“석연찮으니까 개인적으로 알아봤겠죠. 영화 쪽에서 들었을 겁니다. 은하씨가 굉장히 놀랐어요. 믿었던 사람이 자기를 속였다는데 대해 허탈감을 느꼈을 거예요.”

- 그래서 뭐라고 해명을 했습니까. 그때도 51년생이 아니라 64년생이라고 강력하게 어필했다고 하던데
“맞습니다. 한국 호적이 잘못됐다, 외국 영주권을 보여주면서 여기에 나온 게 실제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어요. 내가 그렇게 솔직하게 말하지 못한 이유는 은하씨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한 것도 있었어요. 인정받는 배우 아닙니까. 그런 스타가 나이 많은 이혼남과 사귄다고 소문이 나면 우스운 꼴이 될까봐. 그날 이혼남이라는 사실도 털어놨어요.”

▣ 이혼까지 알고 쓰러진 은하를 보고도 솔직하지 못했다

어머어마한 충격으로 쓰러지기까지 한 심은하에게 그는 영주권에 맞춰 다시 정정한 호적을 갖다줬다고 한다. 사랑하는 여자를 안심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심적 갈등으로 헤어지려고 하다 다시 그를 믿어보기로 마음을 추스른 심은하. 이혼 경력도 문제삼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 하지만 그때까지도 실제로 이혼한 것은 아니었죠?
“93년엔가 전처가 일방적으로 이혼 서류를 나한테 주고 아이들과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성격 차였어요. 아마 내가 잘못했겠죠. 하지만 그때는 이혼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러다 96∼97년쯤 이혼해야겠구나, 결심을 하게 되는 일이 있었어요. 서류 정리는 은하를 만난 뒤인 99년 말에 하게 됐지만 이미 이혼한 거나 마찬가지였고, 어차피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완료될 일이라 그냥 마무리됐다고 말한 거죠.”

- 만난 지 한 달도 채 되기 전에 일어난 그 사건으로 은하씨가 심하게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는 것은, 그때 이미 정회장을 사랑하고 있었다는 얘기가 되네요
“……뭐, 그런 셈이죠. 나도 마찬가지구요.”

- 은하씨 부모님은 언제 처음 만났나요
“은하씨가 그 일로 충격을 받고 쓰러진 직후였어요. 비교적 친절하게 대해주셨죠. 어머니는 나이와 이름에 얽힌 저간의 사정을 알고 오셨기 때문에 나를 별로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남자답고 씩씩하다고 보신 것 같아요.”

- 그 후에도 부모님을 자주 뵀나요? '부모님이 결혼을 반대한다'는 그 동안의 보도와 분위기로 보아 좋은 일보다는 좋지 않은 일로 만난 일이 더 많았을 것 같은데요
“몇차례 만났는데 좋은 일, 좋지 않은 일 반반이었어요. 그 분들이야 은하씨가 혼기가 찬 나이니까 만나는 남자를 눈여겨볼 수밖에 없었을 테고, 자기 딸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해줄 남자인지 관심이 크셨겠죠.”

- 은하씨 부모님이 정회장이 결혼을 했었다는 얘기를 듣고 진위를 물었을 때 '법적으로 한국과 미국 두 곳에 모두 혼인신고가 돼있다. 미국에서는 벌써 이혼소송을 벌여 재판이 끝났다'고 대답하셨다더군요. 미심쩍은 은하씨 부모님이 수소문 끝에 정회장의 전처와 만났다는데 알고 계셨습니까? 그 자리에서 전처가 한국에서 결혼을 했는데 무슨 미국에서 혼인신고를 하고 이혼소송을 하냐고 했다는데요
“나랑 헤어진 마당에 좋은 소리 안 나왔겠죠. 글쎄요, 그것도 그분들의 말이 다 맞습니다.”

정회장은 목이 탔는지 주방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왔다. 그가 자리를 뜬 사이에 시계를 보니 벌써 새벽 3시. 목을 축이고 인터뷰를 이어갔다. 시종일관 그의 손에서 담배가 떨어지지 않았다.

- 은하씨가 정회장을 믿어보겠다고 한 후로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나요
“삐걱거리기도 했지만 대체로 잘 지냈습니다. 어머님이 반대를 했지만 은하씨는 나와 결혼을 하려고 했었어요.”

- 결혼 얘기는 언제부터 오갔습니까
“작년 봄이었어요. 만나고 6∼7개월쯤 지나고 나서였죠. 누가 먼저 말을 꺼냈는지는 모르겠네요. 은하씨도 나이가 있는데 결혼 생각 없이 남자를 만나진 않았겠죠.”

- 그리고 나서 2000년 11월 미국 동행 기사가 나온 겁니까
“네. 결혼을 하기로 하고 나에 대한 마지막 확인차 미국에 갔던 거예요. 나에게 은하씨가 확신을 달라고 했어요. 내가 미국에서 오래 살았으니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면 서울보다 그곳이 나았죠.

사업체도 보여주고 여행도 좀 하다 오려고 했는데 갑자기 동행 기사가 터지는 바람에 당황했고, 둘 다 심기가 편치를 않았어요. 어쨌든 회사 일도 볼겸 갔던 거라서 GRF회사도 둘러보고, 시애틀과 새너제이, LA, 샌프란시스코, 샌디에고 등을 돌다 2주만에 은하씨 먼저 귀국했습니다.”

2000년 11월 1일, 출국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기자들에게 목격되면서 ‘심은하 결혼 임박설’이 터져나왔다. 기사에서 보도된 것처럼 밀월여행이나 결혼 준비 차원의 여행이 아니라, 자신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는 심은하를 다독거리기 위해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는 정회장.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팩스로 동행 기사가 날아왔다.

‘중견 사업가 정호영(49세)’이라는 문구를 보고 심은하가 발끈했고, 두 사람의 관계가 또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이 문제가 공개적으로 불거진 것이다. 그는 자신을 믿으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 아예 터놓고 이해를 구하는 게 옳지 않았나요? 왜 굳이 감추려고 했습니까
“아까도 말했듯이 사랑하는 여자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나는 사랑한다면 그것이 문제가 될 게 있겠느냐는 생각이었어요.”

▣ “당신의 방패막이가 되어줄테니 진실을 얘기해달라”

- 은하씨는 ‘불미스러운 일들이 있었지만 좋다,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 그러니까 나에게 당신 나이와 이혼 여부에 대해 거짓없이 말해달라. 뭐가 어찌됐든 내가 모든 것을 덮어두고 새로 시작하겠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내가 당신의 방패막이가 돼주겠다’고 했다면서요. 그렇다면 얼마든지 수습할 기회가 있었던 것 아닙니까
“사실, 이렇다 저렇다 따지기 싫었습니다. 현재와 미래가 중요한 거지 과거사는 묻어둘 수도 있잖아요. 내가 은하씨에 대한 사랑으로 불신을 받았다면 큰 문제겠지만 감정의 기본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결혼하면 내가 지금까지 힘들고 지치게 했던 것들, 살면서 다 갚아주려고 했어요.

그런데 은하씨는 나를 신뢰하지 못했던 거죠. 물론 여자들에게는 그런 기본적인 믿음이 제일 우선이라는 거 압니다. 나로서는 나이나 이혼 여부가 그다지 의미가 없었는데 말예요. 남자와 여자의 차이겠죠. 남자들은 연애할 때 자신에 대해 어느 정도는 부풀리기 마련입니다.”

- 미국 동행 이후 은하씨와 가족들이 정회장에 대한 불신이 깊어졌는데도 불구하고 2월 결혼, 5월 결혼, 9월 23일 결혼 등의 기사가 계속 나왔습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습니까
“내가 밀어부쳤고 은하씨는 소극적으로 나한테 끌려왔어요. 하지만 적극적으로 거부하진 않았어요. 그래서 나는 가족들보다는 당사자의 선택이 먼저라고 생각했습니다.”

- 지난 6월 결혼을 반대하던 은하씨 어머니가 두 딸이 공부하는 프랑스로 간 후에 결혼을 서둘렀나요? 마치 어머니가 없는 틈을 타서 일을 처리하려는 것처럼 보도됐습니다
“그런 내용도 있습니까? 그러면 그게 맞을 겁니다. 혼수도 내 맘대로 준비하고 결혼식장도 나 혼자 알아봤습니다. 진실의 여부가 어떻든지 모든 비난의 화살은 제가 맞아야 되겠죠. 다 잘못했으니까.”

- 결혼식 준비는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나 진행이 됐었습니까
“이 빌라 근처에 신혼집을 구했었고, 식장도 잡았고, 주례도 부탁을 드렸습니다. 이수성 전 총리가 해주기로 하셨어요. 예전부터 제가 잘 따랐고 어려울 때 힘이 돼주던 분이시거든요.”

- 은하씨는 결혼과 동시에 은퇴할 계획이었나요
“결혼을 하게 된다면 은하씨가 연기 활동을 접고 사업가의 아내로서 내조해주길 바랐습니다. 은하씨도 그런 생각이었구요.”

- 9월 23일 결혼 날짜는 정회장이 정하고 은하씨에게 통보한 겁니까
“그래요. 8월말인가 9월초쯤이었습니다. 9월 23일이 음력으로 8월 7일이었는데 아는 분이 길일이라고 하더라구요. 은하씨 생일이기도 하고….”

- 은하씨 반응은 어땠나요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은 표정이었어요. 나한테 계속 끌려왔으니까 내 주장대로 가야하나보다 했는지….”

- 하지만 그때 이미 은하씨는 마음이 떠났다고 하던데요
“글쎄요.”

▣ 은하의 마지막 사인 외면, 사실은 나도 흔들렸다

- 결혼 날짜를 통보받고 나서 은하씨가 양가 상견례를 하자고 했었죠? ‘비록 마음이 떠난 상태였지만 그래도 한때 사랑했으니 다시 생각해보겠다. 당신이 나와 정말 결혼하고 싶으면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정식으로 날짜를 잡자. 당신 쪽에서 사주를 보내면 우리쪽에서 날짜를 잡겠다’고 했다는데, 왜 그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까
“나한테는 결혼이 기정사실이었습니다. 언론에 보도되고 사람들이 다 아는 마당인데 번복할 수가 없잖아요. 나는 끝까지 당사자들이 결정할 권한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죠. 은하씨가 결혼식 날짜가 언론에 알려진 이후에도 또 한번 어머니를 모셔오라는 얘기를 했습니다. 마지막 사인이었던 셈이죠.

내가 은하씨의 제안을 거절한 것은 타이밍이 적절하지 않아서 였어요. 이미 가족들이 나를 못믿는 상황이라면 어머니를 모셔온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게 마지막 기회라는 것은 눈치채지 못했어요. 만약에 알았다면 요구를 들어줬겠죠. 일이 끝나고 마지막 사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마음이 아팠어요. 사랑하는 여자의 간절한 바람을 들어주지 못해서요.”

- 사실상 거기서 결별이 예고된 거네요
“그렇습니다. 그날 은하씨와 다퉜어요. 결혼식 보름 전쯤이었을 겁니다. 내가 좀 퉁명스럽게 결혼 안 하면 될 거 아니냐고 말이죠. 그것을 보고 은하씨가 결정적으로 돌아선 것 같아요. 그러면 하지 말자고 그러더군요. 내 본심은 그게 아니었어요. 남자들 가볍게 삐치면 더 오버해서 표현하는 거 있잖습니까.”

- 은하씨가 내민 손을 잡지 않았다는 것은 정회장도 흔들렸다는 의미 아닌가요
“은하씨가 나한테, ‘오빠 하늘을 손바닥으로 가리려고 하지마’라고 충고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 하늘이 아니라 그보다 더 넓은 것이라도 내 손으로 가리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그러나 역부족이고 내 힘에 부친다는 생각이 들 때면 흔들리기도 했죠.

한편으로는 이런 의구심도 들었습니다. 과연 그분들이 내가 어려울 때 버팀목이 돼줄까, 나를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일까 하는. 나를 계속 불신한다면 가족이 된다고 해도 끊임없이 문제가 발생할 테니까요. 나를 무조건 믿고 따라줬다면 최선을 다해서 그동안의 불신들을 깡그리 불식시킬 자신이 있었는데….”

- 그런데도 왜 결혼을 추진했습니까
“내 사랑에 대한 책임이죠.”

- 정회장이 결별을 인정한 시점은 언제인가요
“9월 13일자 신문에 23일 워커힐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기사가 나간 다음이었어요. 은하씨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결혼이 안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기사 내용에 대해 몹시 불만을 토로했어요.”

정회장은 그로부터 며칠 후에 심은하의 아버지에게 결별을 통보받았다고 했다. 더 이상은 매스컴에 결혼 관련 기사가 실리지 않도록 신문사와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결별 사실을 알리라고 당부하더라는 것.

- 결혼을 없었던 일로 하자는 말을 듣고 심정이 어땠습니까
“그 순간에는 담담했어요. 팔자이고 운명이거니 생각했죠. 주제도 모르고 너무 교만하게 굴었어요. 내가 죽을 고비를 두 번 넘겼습니다. 차가 전복되는 교통사고를 당하고도 멀쩡하게 살았고, 언젠가는 비행기 불시착 사고로 죽을 뻔했어요. 그때 깨달은 게 있습니다. 내가 이런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살았으니 앞으로 더 겸손해지고 매사에 감사해야겠다고. 그런데 그걸 잠깐 잊고 교만하고 오만하게 행동을 했어요. 깊이 반성합니다.”

- 은하씨에게 기자들이 물으면 결별했다고 하지 말고 연기했다고 얘기해달라고 부탁했다던데요? 은하씨는 정회장의 당부대로 ‘기자들에게 결혼식이 연기됐으니 아무 것도 기사화하지 말아달라고 했는데, 결혼 날짜가 알려지면서 식장이 혼잡할 것같아 추석 이후에 미국에서 식을 올린다는 등의 사실과 다른 기사가 나오는 것을 보고 언론사에 전화를 걸어 직접 결별을 알렸다’고 하더군요
“결별이라고 신문에 나가면 한동안 그것 때문에 시달릴 게 뻔하니까, 연기했다고 둘러대고 자연스럽게 헤어지는 걸로 모양새를 갖추자는 심산이었습니다. 지금 보십시오. 두 달이 지났는데도 내 의지와 관계없이 (매스컴에) 휘둘리고 있잖습니까”

▣ 명의 이전해준 집문서와 현금 5억원에 대한 진실

- 돈에 얽힌 의혹도 있습니다. 은하씨 아버지 앞으로 명의가 이전된 다가구주택 집문서를 부모님에게 건넸습니까? 항간에는 집과 별도로 5억원을 줬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그건 사실과 달라요. 미국 동행 후에 은하씨가 CF 모델로 출연하던 회사에서 제품의 이미지가 손상됐다고 위약금을 물어내라고 했답니다. 위약금이 얼마나 되냐고 물었어요. 나로 인해 은하씨가 피해를 보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자그마한 집 한 채를 제공하겠다고 했습니다.

그건 근저당권이 설정된, 금액으로 얼마 되지 않는 부동산이에요. 사랑하는 여자가 자기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는데 멍청히 보고만 있을 남자가 어디 있습니까. 꾸어서라도 해주고 싶지 않겠어요. 하지만 부모님이 완강하게 받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그가 2년여간 지켜본 심은하나 그녀의 부모님은 절대 돈에 욕심을 내거나 돈의 유혹에 넘어갈 사람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의 의도를 어떻게 파악하든, 우격다짐으로 놓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라도 책임을 지고 싶었다는 것이다.

심은하 가족들은 집문서를 돌려주기를 원해 복지재단에 기증 의사를 밝혔지만, 서류 절차가 있어 아직 명의는 심은하 아버지 앞으로 돼 있다고 했다. 현금 5억원에 대해서는 언급할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표정이었다.

- 결별 이후에도 은하씨에게 계속 연락했다고 하는데, 왜 그러셨습니까. 은하씨를 못 잊어서 그랬나요
“결혼 날짜가 보도되고 연기, 결별로 이어지면서 은하와 얼굴을 맞대고 제대로 얘기할 기회가 한 번도 없었어요. 그렇게 ‘결별’이 됐던 거예요. 재결합 때문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내 진심을 전하고 싶었던 겁니다. 아무 말도 없이 헤어질 수는 없는 거잖아요.
진솔하지 못했던 점을 진심으로 사죄하고 싶었어요. 전화 통화는 아니고 수차례 문자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은하씨는 한번도 답신을 하지 않았어요. 일방적으로 내가 한 거죠.”

- 어쨌든 은하씨와 2년여를 만나셨는데 좋았던 기억이 훨씬 많겠죠? 처음부터 끝까지 추궁하고 해명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을 테니까요
“글쎄, 일이 이렇게 되고 나니까 좋았던 기억보다는 아쉬움이 많이 남네요. 솔직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미안함….”

- 은하씨를 얼마나 사랑했습니까
“사랑을 수나 양으로 표현할 수 있나요. 허기자는 (남편과)얼마나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얼마나’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여유롭게 인터뷰에 응하고 있지 못했겠죠.”

줄곧 침착한 분위기를 유지하려 애쓰던 그는 이 대목에서 잠깐 목이 잠기는 듯했다. 얼굴도 상기됐다. 자신의 사랑이 연일 언론에 보도되고 결국은 ‘사랑하던 여인’과 헤어진 뒤, 그 여인의 분노에 찬 인터뷰에 대해 기자에게 해명을 요구받고 있는 자리였다.

- 은하씨와 만나면서, 그리고 헤어진 뒤에 눈물을 흘린 적이 있나요
“허기자는 결혼하기 전에 연애하면서 울어봤어요? 눈물을 흘린 경험이 있다면 깊이 있는 사랑을 한 거고, 없다면 그저 그런 거예요. 눈물을 흘렸다기보다… 내가 처한 시추에이션(상황) 때문에 울음보다 더 가슴을 후벼파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장시간 이어진 인터뷰로 그의 얼굴에 피곤한 기운이 스치고 지나갔다. 비어있는 찻잔에 천천히 커피를 따랐다. 시간은 아침을 향하고 있었다. 분위기도 환기시킬 겸 화제를 옮겨보기로 했다. 출생과 성장 환경, 미국 생활, 가족에 대한 얘기들. 상세하게 대답하진 않았지만 드문드문 말을 꺼냈다.

- 고향이 어디세요. 유복한 집안에서 자랐나요
“원적은 부산이고, 본적은 충남 홍성이에요. 아버지가 군생활(육사 2기)을 해서 여기저기 이사를 자주 다녔습니다. 어려서는 집안이 괜찮은 편이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집안이 몰락했어요. 어머니는 생존해 계십니다.”

- 외국에는 언제 건너갔습니까
“고등학교 입학하자마자 그만두고 바로 갔습니다. 집안이 망했기 때문에 내 스스로 인생을 개척해야 했어요. 청소, 식품가게 점원, 세탁소, 세일즈 닥치는 대로 했죠. 외국으로 가기 전에 학교도 제대로 못다닐 정도로 비참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혼자 힘으로 공부하고 학비를 해결하다보니 뭐든지 혼자 처리하는 게 습관처럼 몸에 배었어요. 외로움도 별로 안 타구요.”

- 학력은 어떻게 됩니까. 은하씨가 학력 부분도 투명하지 않았다고 하던데
“그게 무슨 말이죠? (고개를 갸우뚱하더니)아, 고등학교 얘길 거예요. 졸업을 안했는데 S고 출신이라고 한 부분을 그렇게 생각한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 시카고 주립대와 일리노이 공대 대학원을 졸업했어요. 학력을 속이다뇨, 내가 일리노이 공대 한국 동문회 부회장이에요. (동문 회보를 보여주며)이것 보세요. 학력 속인 사람 이름이 여기 이렇게 버젓이 나오겠어요?”

- 사업은 언제 시작했나요
“87년에 서울에서요. 그 전에는 국내 H그룹에 몸담고 있었죠. 사업 시작한 후로는 미국과 서울을 왔다갔다 했습니다. 주로 정보통신 관련 회사를 운영했어요.”

그는 일리노이 공대 대학원에서 산업공학 석사와 경영정보학 석사를 받고 귀국한 후 H그룹의 신규사업팀장으로 일하다 1년만에 독립, 무선정보통신 사업에 뛰어들었다. 창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 최대 통신회사인 AT&T사와 TIE사에 무선 전화기를 공급했고, 미국 벨 에틀랜틱사와 함께 동남아 통신사업에도 진출했다. 단기간에 급성장한 케이스.

▣ 은하를 향한 '사랑'에는 결단코 거짓이 없었다

- 출국을 앞두고 마음이 무겁겠습니다
“비행기에 오르면 좀 쓸쓸하겠죠. 앞으로 한 10년, 사업만 바라보고 열심히 뛰려고 합니다. 최근 2∼3년 동안 일을 제대로 못했거든요. 한국에 자주 들를 일은 없을 것 같군요. 가끔 출장이나 오면 모를까.”

- 시간이 흐른 뒤에 또 다른 사랑이 찾아오겠죠?
“제가 전형적인 A형이에요. A형의 특징이 뭔지 아세요. 자기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새로운 것보다 잃어버린 것에 대해 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는 거예요. 이중적인 면도 있죠. 다른 사랑? 이것으로 대답이 된 것 같은데….”

마지막 질문에 답을 하고는 씁쓸하게 웃는다. 그는 인터뷰 중간 중간에 심은하와 그녀의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고, 모든 잘못은 자신으로부터 나왔다는 말을 자주 꺼냈다. 인터뷰에 응한 이유도 그의 솔직한 심정이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라고. 2년 동안 한 여자를 사랑하면서 생애 최고의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맛본 정호영 회장. 서울 하늘 아래에서 머물 시간이 이제 하루 남았다.


프린트 메일로보내기 내블로그에 저장
기사공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