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백년명가②] “88년부터 찌개로… 김치 넣기 시작했지”

[백년명가②] “88년부터 찌개로… 김치 넣기 시작했지”

[일간스포츠] 입력 2009.06.24 07:06 / 수정 2009.06.24 07:50
글자크기 글자 크게글자 작게
경기도 의정부시 부대찌개 거리의 '오뎅식당'. 주인 허기숙 할머니(75)는 이곳에서 ‘대장님’으로 불린다. 14개 부대찌개 음식점이 있는 골목의 골목대장인 것이다. 현재 약 13평의 공간에 64석이지만, 47년 전엔 1.5평 남짓한 공간에서 5개의 탁자로 시작했다. 그 당시 메뉴는 단 두 가지. 어묵과 우동이었다.

상호에 '오뎅'이 들어가는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주 고객은? 속칭 ‘양공주’들이었다. 가게를 뺑 두른 것이 바로 미군부대였기 때문. 밤 11시가 되면, 파김치가 된 그녀들이 하나 둘 가게로 들어와 어묵과 우동을 시키곤 했다. 진한 화장을 하고 댄스홀에 나가 미군과 한바탕 춤을 추고 오는 길이었다.

“손바닥 만 한 가게에 화려하고 예쁜 여자들이 들락거리니 호기심이 생겼던 거지. 나도 지금은 이렇게 쭈글쭈글하지만 그땐 꽃 같았고. 언제부턴가 매달 보름과 그믐이 되면 급여를 탄 하우스보이(미군 부대 안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한국인 남자)들이 몰려들었어.”

당시 미군들이 보여준 세계는 별천지였다. 먹을 게 없어 굶어야만 했던 시절, 그들이 먹다 남긴 햄과 칠면조, 양갈비는 누가 보기에도 아까웠다. 어묵과 우동을 판지 6개월 째, 한 하우스보이가 제안 했다.

“아주머니, 자식도 셋이나 있는데 두 가지만 팔아서 되겠어? 내가 부대에서 남는 고기 가져다줄테니 막걸리랑 같이 팔아보면 어때?”

그렇게 오뎅식당의 부대볶음이 시작됐다. ‘버려진 고기’가 '아까운 고기'로 탈바꿈해, 잘리고 볶아져 맛있는 술안주로 태어났다. 당시 가격은 150원.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던 어느 날, 세관에서 들이닥쳤다. 미군부대에서 나온 음식을 반입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이유였다. 그때부터 한 달이면 11번 세관을 들락거렸다.

양주와 담배 등을 밀수하다 붙잡힌 50여명의 사람들로 가득 찬 세관에,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멍하니 앉아있노라면 별 생각이 다 들었단다. 그러나 3남매를 키워내야 한다는 일념은 배짱을 키웠다. 잡혀 들어가는 것에 무덤덤해질 때 쯤, 88올림픽이 개최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할머니는 더 이상 세관에 잡혀가지 않았다. 대신, 한 달에 두 번의 위생 검사가 행해졌으며 가게를 깨끗이 정비하고 확장하라는 지시를 받게 되었다. 마침, 가게 바로 옆에 살며 할머니에게 가게를 세놓았던 주인이 캐나다로 이민을 가 자리를 넘겼다. 그 때 주인이 살던 집까지 터서 확장한 게 지금의 모습이다. 가게를 넓히자 손님들은 외지에서도 몰려왔다.

당시까지는 술안주 개념으로만 팔았던 볶음을 한 끼 식사로 먹을 수 있게 해 달라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결국 1988년부터, 물을 붓고 찌개로 만들어 공깃밥과 함께 팔기 시작했다. 값도 800원으로 올렸다. 현재 가격은 7000원. 김치를 넣은 것도 그 때부터였다. 얼큰한 국물 맛을 내기 위해서였다.

현재, 오뎅식당의 부대찌개엔 김치• 햄• 소시지• 소고기완자와 파• 마늘• 후추가 들어간다. 1988년부터 재료의 변화도 생긴다. 미군부대 하우스보이가 아니라 정식수입업자에게서 재료를 구입하며 기존의 양갈비와 칠면조 등 구하기 어려운 재료는 자연스레 빠지게 된다.

이 집의 역사는 반백년에서 끝나지 않을 듯하다. 손자 김민우(27세)씨가 할머니의 오뎅식당을 물려받을 준비를 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가게를 이을 생각으로 경영학을 전공했다는 손자는 이렇게 말한다.

“일본에선 3대째 하는 집들 흔하잖아요. 이게 저희 가업인데 여기서 역사가 끝난다고 생각하면 아까워요. 앞으로 할머니께 더 많이 배워서 최종적으로는 부대찌개를 다른 나라에도 널리 알리고 싶어요.”


부대찌개집의 스테이크 메뉴?

우리는 뜻밖에도, 부대찌개집에서 종종 ‘스테이크’나 ‘소시지구이’ 라는 메뉴를 볼 수 있다. 찌개집에 웬 스테이크? 누군가는 말했다. ‘아웃백에서 소주 마시는 맛’이라고. 그 맛이 궁금해 평택 ‘최네집’에서 T본 스테이크와 소시지구이, 베이컨 구이를 시식해봤다.

T본 스테이크는 버터를 녹인 철판에 두툼한 호주산 소고기를 척 얹어 굽는다. 버터 위에서 익어가는 고기냄새는 꽤나 고소하다. 그러나 굽기 전까진 양식당에서 파는 스테이크와 마찬가지지만, 익은 순간 칼이 아닌 가위로 마구 자르는 모습이 색다르다. 다 익은 스테이크를 접시 위에 올려 우아하게 썰어가며 먹는 것이 아니라 ‘삼겹살 먹듯’ 가위질을 해 집어먹는 것이다.

머스터드에 스테이크용 소스인 A1을 섞은 작은 접시가 딸려 나오지만, 쌈장에 찍어먹는 사람들이 더 많다. 쌈장 뿐 아니라 상추에 싸 마늘까지 얹어 먹는다. 소시지구이의 소시지는 찌개용과는 다른 거대한 크기의 폴란드식 KIELBASA 프리미엄 소시지로, 돼지고기에 물과 옥수수시럽, 갈릭파우더, 파프리카를 첨가한 것이다. 널찍한 철판에 팽이버섯, 부추, 양파를 함께 깔고 뒤적여 가며 익힌다.

소시지 역시 상추에 싸 부추와 팽이버섯을 얹어 먹는다. 쫄깃하고 고소한 맛이 난다. ‘부대찌개집에서만 맛볼 수 있는 스테이크와 소시지구이’. 미국적 재료에 한국적 식습관을 더했다는 공통점을 떠올리면, 부대찌개집에서 이들을 만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 듯하다.

이상은 인턴기자 [coolj8@joongang.co.kr]
사진= 조용철 기자 [youngcho@joongang.co.kr]

[백년명가①] 부대찌개, 10여가지 고기볶음서 출발
[백년명가②] “88년부터 찌개로… 김치 넣기 시작했지”
[백년명가③] 이태원의 고집 “부대찌개 아니라 존슨탕”


프린트 메일로보내기 내블로그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