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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신’ 앞세운 십자군 전쟁, 그 뒤엔 교황·황제의 권력다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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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신’ 앞세운 십자군 전쟁, 그 뒤엔 교황·황제의 권력다툼 있었다

[중앙일보] 입력 2011.07.16 00:14 / 수정 2011.07.16 00:14
십자군 이야기1
시오노 나나미 지음
송태욱 옮김
차용구 감수, 문학동네
348쪽, 1만3800원


신(神)의 이름으로 전개된 성전(聖戰). 하지만 인간의 원시적 광기와 욕망을 끝내 감출 수 없었던 십자군 전쟁. 기독교와 이슬람이라는 세계 양대 종교가 200년간 벌인 이 살육의 드라마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중세를 암흑의 시대라 부른다면 십자군 전쟁을 빼고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18세기 프랑스 화가 귀스타브 도레가 십자군 전쟁을 소재로 그린 그림. 1096년 유럽을 출발한 제1차 십자군이 예루살렘 부근의 항구도시 카이사레아에 도착해 모스크에 피신한 이슬람 교도들을 공격하는 장면이다. 『그림으로 보는 십자군 이야기』에 수록돼 있다.
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로 세계적 작가 반열에 올랐고 우리에게도 친숙한 시오노 나나미(鹽野七生·74)가 그 시대의 이야기를 새롭게 꺼내 들었다. 3부작으로 예정된 『십자군 이야기』 1권이 번역됐다. 시오노는 2010년부터 십자군 이야기를 써오고 있다. 올 가을께 2권이 번역될 예정이고, 마지막 3권은 내년 봄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시오노의 십자군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전쟁은 인간이 여러 난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려 할 때 떠올리는 아이디어다.” 1992년부터 로마 제국 흥망의 역사를 매년 1권씩 모두 15권이나 펴낸 그의 내공에서 우러나온 한마디가 상식적인 듯하면서 의미심장하다. 이기적 본능의 인간에게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인가. 인간의 한계를 보완해야 할 종교가 오히려 전쟁에 앞장선 아이러니를 저자는 담담하고 치밀하게 풀어 헤친다.

 세계사 교과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1078년 ‘카노사의 굴욕’이란 사건이 있다. 당시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가 황제 하인리히 4세를 눈이 내리는 카노사 성 바깥에 사흘 밤낮을 세워놓았다. 파문 당한 황제가 교황이 머물던 카노사성 앞에서 용서를 구하는 장면이다. 로마 교황의 권위가 신성로마제국 황제 위에 군림한다는 사실을 서유럽 그리스도교 세계에 과시한 사건이었다.

 세계사 교과서에 이 이상의 서술은 나오지 않는데, 시오노는 그 대목에서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시오노의 『십자군 이야기 1』은 ‘제1차 십자군’ 시대를 재구성했다. 십자군 전쟁의 발발 배경을 설명하는 데 주력하는 분위기다. 교황 권위와 황제 권력의 힘겨루기가 관전 포인트다. 카노사에서 황제의 굴욕으로 권력다툼은 다 끝난 게 아니었다.

 카노사의 굴욕은 황제의 설욕으로 이어지고, 십자군 전쟁은 그 연장선 위에 놓여 있었다. 카노사의 굴욕 이듬 해부터 황제의 반격이 시작된다. 교황 그레고리우스에 대한 황제의 반격은 집요했다. 군사력을 앞세운 황제의 탄압을 피해 7년간 로마를 떠나 살아야 했던 그레고리우스 교황은 죽을 때까지 교황의 공식 거처인 라테라노궁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레고리우스를 계승한 우르바누스 2세도 교황이 된 후 9년 동안이나 그레고리우스와 같은 처지에서 지내야 했다. 황제 하인리히가 옹립한 ‘대립 교황’과 그를 추종하는 성직자들이 로마에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20년 가까이 진행되는 가운데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대담한 승부수’를 던지는데, 그게 바로 십자군의 시작이었다. 1095년 11월 클레르몽에서 열린 가톨릭 공의회에서 우르바누스 교황은 기독교 세계의 신도들에게 이슬람 교도를 상대로 한 성전을 제창한다.

 “이것은 내가 명하는 것이 아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명하는 것이다. 그 땅으로 가서 이교도와 싸워라. 설사 그곳에서 목숨을 잃는다 해도 너희의 죄를 완전히 용서받게 될 것이다. 신께 부여받은 권한으로, 나는 여기서 그것을 분명히 약속한다.”

 황제에겐 없고 교황에게만 있는 힘, 그것은 신의 이름을 빌리는 것이었다. 우르바누스 교황의 연설을 듣던 청중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Deus lo vult)”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고 한다. 그때까지 서유럽 그리스도교도들 사이에 전개된 각종 분쟁은 휴전이 선포되고, 대신 그들의 칼 끝은 ‘공동의 적’ 이슬람교도를 향하게 되었다.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는 구호가 휘날리는 가운데 권력의 추는 다시 교황에게 돌아오기 시작했고, 마침내 교황은 로마에 입성할 수 있었다.

 『십자군 이야기 1』은 1095년 이후 형성된 제1차 십자군이 유럽을 출발해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십자군 국가를 세우는 1118년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이때만해도 이슬람 세계에서는, 십자군이 종교를 기치로 내건 군대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을 시오노는 강조한다. 당시 흔했던 영토전쟁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이슬람 세력이 종교전쟁임을 자각하는 것은 십자군에겐 최대 적이지만 이슬람에겐 영웅인 살라딘이 등장하면서부터인데, 이후의 이야기는 2권과 3권에서 계속된다.

 『그림으로 보는 십자군 이야기』도 이번에 함께 출간됐다. 200년 지속된 십자군의 윤곽을 잡는 데 도움을 준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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