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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동북공정에 앞서 '서남공정'은 어떻게 …

중국 동북공정에 앞서 '서남공정'은 어떻게 …

[중앙일보] 입력 2006.09.14 05:08 / 수정 2006.09.14 05:51

영토분쟁 언제 일어날지 몰라
20년 전 덩샤오핑 지시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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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시작된 중국의 동북공정은 중국이 주도한 긴 역사 왜곡의 완결편에 해당한다. 1980년대부터 티베트(西藏).몽골.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에 대한 새로운 역사해석이 착착 진행됐기 때문이다. 이들 지역의 독립국 역사를 지우고,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편입시키려는 시도다. 심지어 중국은 베트남도 중국의 역사라고 소개했다.

◆ "티베트는 늘 중국 땅"=티베트의 중국 역사편입은 1986년 서남공정(西南工程)이라는 이름으로 이뤄졌다. 당시 최고 실력자 덩샤오핑(鄧小平)이 서남공정을 직접 지시했다. 작업은 중국 사회과학원 산하 중국장학연구중심(中國藏學硏究中心)이 주도했다. 변강사지연구중심(邊疆史地硏究中心)이 동북공정을 수행하고 있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티베트 연구의 핵심은 한장동원론(漢藏同源論)으로 요약된다. 중국인인 한족(漢族)과 티베트의 장족(藏族)은 문화와 언어의 뿌리가 같다는 주장이다.

중국은 먼저 티베트가 늘 중국의 일부분이었다고 주장했다. 7세기 초 국가를 형성한 이후 원(元)과 청(淸)대를 제외하고는 독립적인 국가를 유지해온 티베트의 역사를 말끔히 지운 셈이다. 당(唐)대 장안(長安.현재의 西安)까지 세력을 넓히면서 중앙아시아의 패자로 군림했던 8세기의 티베트 역사도 통째로 빠졌다.


◆ "칭기즈칸도 중국 역사"=중국은 1995년 '몽골국통사' 3권을 출판하면서 "몽골의 영토는 중국의 영토"라고 주장했다. 몽골공화국이 강하게 반발했지만 "학술활동일 뿐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아니다"라는 말로 비켜갔다. 동북공정에 쏠린 한국의 비판을 받아넘기는 수법과 유사하다.

중국이 몽골 역사에 집착하는 것은 몽골이 현재 몽골공화국과 중국의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로 분할돼 있어 언제든지 영토분쟁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장기적인 포석인 셈이다. 몽골은 청의 멸망을 틈타 1911년 독립을 선언했다. 현재 몽골공화국인 당시의 외몽골은 소련의 지원을 받아 1924년에는 몽골인민공화국의 개국을 선언했다. 네이멍구는 일본의 패퇴 이후 중국이 접수했다. 네이멍구는 1947년 중국의 첫 자치구가 됐다.

◆ 위구르족에 대한 서북공정=신장 위구르족을 대상으로 한 역사 및 지리에 대한 종합연구인 서북공정(西北工程)은 2002년 동북공정과 함께 시작했다. 그러나 지난해에야 겨우 기초과제영역이 선정됐다. 우선 순위에서 동북공정에 밀린 탓이다.

돌궐이라는 명칭으로 역사에 등장하는 위구르족은 투르크메니스탄이라는 혈족 국가를 옆에 두고 있고, 멀리는 터키까지 이어지는 방대한 민족이다. 583년 돌궐은 수나라에 패해 동서 돌궐로 나뉘었고 다시 당나라에 의해 반세기동안 지배를 받았다. 당나라 지배에서 벗어난 위구르족은 돌궐제국을 출범시키는 등 중앙아시아 역사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1755년 청나라 건륭제가 이 지역에서 부족 반란을 진압하면서 돌궐족 영토는 중국에 편입됐다. 중국 영토가 된 지 250년밖에 안 됐기 때문에 지금도 위구르족 일부는 동투르키스탄 개국을 목표로 독립운동을 벌이고 있다.중국은 한나라 시기부터 신장이 월씨(月氏)족, 강(羌)족, 흉노, 한족이 섞여 살던 다민족 지역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한나라가 기원전 60년 신장에 서역도호부(西域都護府)를 설치한 이후 중국 역대 왕조가 신장을 군사정치적으로 관할했다고 소개했다.

중국은 특히 신장의 각 부족은 중국 왕조와 가까운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해 왔고 '중화민족 대가정(大家庭)'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위구르는 지금도 외모.언어.문자.종교가 중국과는 전혀 다르다. 1949년 신장에서 위구르족 비율은 76%였으나 2000년엔 59%로 떨어졌다. 중국 정부가 적극 한족의 대량 이주를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 "베트남사도 우리 것"=기원전 208년 중국 역사에 처음 등장하는 남비엣(南越)의 수도는 지금의 광저우(廣州)인 피언응우다. 남비엣은 기원전 196년 중국에 대한 조공관계를 인정했다가 기원전 112년 이를 철회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남비엣의 성격. 베트남은 남비엣이 자주독립 국가였다고 주장하는 반면, 중국은 남방지역에 할거한 지방정권이었다고 역사책에 기술하고 있다. 남비엣 건국 이전, 남비엣 멸망 이후에도 영토 대부분이 중국 영토라는 게 주장의 근거다. 베트남이 나중에라도 광둥(廣東), 광시(廣西)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할 가능성에 대비한 역사적 명분 쌓기의 일환이다.

베이징=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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